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훈 센 (문단 편집) == 생애 == 훈 센은 1952년 캄보디아의 껌뽕짬 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베이징에서 망명하면서 라디오로 무장 투쟁을 선동하고 있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을 따라서 친미 정권인 [[론 놀]] 정권에 대항하는 [[크메르 루주]]의 부대 지휘관으로 열심히 싸워 크메르 루주가 집권한 후에도 군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가 깽판을 부리기 시작하자 그는 점차 크메르 루주를 멀리했다고 하며, 결정적으로 그는 베트남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변경지대 자국민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자 크메르 루주의 명령을 거부하고 1977년 베트남으로 도주했고, 이후 베트남에서 게릴라 훈련을 하며 반 크메르 루주 군대를 양성했다. 이렇게 키운 군대를 바탕으로 베트남군이 1978년 12월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베트남과 함께 크메르 루주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주어 베트남과 함께 괴뢰 정부를 이끌었다. 이후 훈 센은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 정권을 몰아내고 수립한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캄보디아 정부]]에서 주요 자리들을 거친 후 [[1982년]]에는 [[헹 삼린]]에 의해 29세에 [[부총리]] 겸 [[외무부]] [[장관]]이 되었고 '''[[1985년]] 32세 때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1997년 7월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노로돔 시아누크]]의 아들이자 원내 1당 대표인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를 캄보디아에서 쫒아냈고, 단독 총리를 맡아 군부의 지지까지 얻어서 권력 기반을 다져나갔다. 물론 라나리드 진영의 게릴라전이 있었으나 손쉽게 격퇴되었다. 이후 캄보디아의 절대권력자가 된 훈 센 휘하 군부대들은 축출된 노로돔 라나리드에게 동조하는 부대원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학살]]했다. 태국으로 도피해온 [[캄보디아]]의 한 경찰관은 "훈 센의 부대가 라나리드 군인들의 자녀들과 아내들을 모두 죽였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186473|자료]] 또한 라나리드 편에 대해서 무자비한 [[고문]]을 실시했는데 증언에 의하면 라나리드 편의 병사는 캄캄하고 환기통이 없는 골방에서 눈이 가려지고 손을 뒤로 묶인채 심문받는 도중 각목과 허리띠, 부러진 책상다리 등으로 심하게 얻어맞았으며 무거운 쇳덩이로 손바닥을 짓누르는 고문을 당했다고 하며, 훈 센측 고문 기술자들이 라나리드측 병사들에게 결코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이들이 수용소에서 마신 물은 하수도 물, 특히 인분이 섞여 구린내가 나는 물이 전부였다고 한다. [[http://news.joins.com/article/3488653|기사]] 또한 전기충격은 기본이고, 달군 쇳덩이로 몸을 지지거나, 머리를 비닐봉지로 묶어 질식시키는 등의 잔인한 고문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한편 타이 국경지대로 숨어든 [[크메르 루주]]와의 '''싸움은 1991년 파리평화협정을 끝으로 끝났다.''' 한편 협정 이행을 위해 대규모 유엔 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에 주둔할 때도 훈센은 야당을 탄압했고 [[유엔]]이 지켜보는 데에도 약 100명 이상의 야권 인사가 살해됐다. 노로돔 시아누크가 서거하자 그 아들 [[노로돔 시아모니]]를 꼭두각시 [[국왕]]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배후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